고객의 심리와 행동
다른 마케팅 믹스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가격을 결정하기 전에 표적시장 고객들이 갖고 있는 가격과 관련된 심리와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개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준거가격
준거가격(reference price)이란 구매자가 가격이 비싼지 싼지를 판단하는 데 기준으로 삼는 가격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어떤 구매자가 PC의 가격이 대개 100만원 정도라고 알고 있다면, 130만원짜리 PC를 보면 비싸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준거가격은 구매자의 과거 구매경험이나 현재 갖고 있는 가격정보를 기초로 형성되므로, 구매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앞에서 예를 든 PC의 경우, 어떤 다른 구매자가 PC의 가격을 150만원 정도라고 알고 있다면, 그에게 130만원짜리 PC는 싸다고 느껴질 것이다.
이처럼 준거 가격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설문조사를 통하여 준거가격을 조사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기업의 마케팅활동이 준거가격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백화점이 세일기간에는 붐비다가, 세일기간이 아닐 때에는 한산한 이유도 준거가격을 이용하여 설명할 수 있다. 즉, 백화점들이 너무 자주 세일을 하기 때문에, 구매자들의 준거가격이 내려가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양복 한 벌이 50만원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백화점에서 자주 세일을 하면서 양복을 30만원 정도에 판매하는 것을 여러 번 보게 되면, 양복 한 벌의 준거가격을 30만원 정도로 하향조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일이 끝나고 가격이 정상수준인 50만원으로 올라가면 쇼크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득이하게 가격인하를 하는 경우에는 구매자들의 준거가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대로, 준거가격이 200~300원하던 라면이 라면시장에 500원짜리 라면이 출시되면, 이 라면의 판매는 부진하지만, 뒤이어 1,000원짜리 라면이 출시되자 500원짜리 라면의 판매가 급증하는 현상 역시 준거가격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소비자가 준거가격을 낮게 갖고 있으면 마케터는 판매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매년 입학 시즌만 되면 터져 나오는 중고등학교 교복 값(유명메이커 기준 약 30만원)이 비싸다는 불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소비자가 어른이 입는 양복값(약30만원)을 준거가격을 삼을 경우, 학생이 입는데다가 양복에 비해 재질도 떨어지는 교복 값이 비싸게 느껴진다. 여러분이 교복대리점의 주인이라면, 교복 값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소비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좋은 방법은 준거가격을 판매자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다. 가령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는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학부모가 지출해야하는 사복 구입 비용은 교복 값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교복 값이 싸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므로 마케터는 자신에게 유리한 준거가격을 제시해서 구매자를 설득해야 한다.
준거가격을 가격결정에 이용한 또 하나의 예는 단수 가격(Odd pricing ,또는 9-ending price)이다. 단수가격이란 예를 들어 PC가격을 100만원이 아니라 99만원으로 설정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불과 1만원 차이지만 심리적으로 매우 싸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가격 전술이다.
2) 유보가격
유보가격(reservation price)이란 구매자가 어떤 상품에 대하여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고 가격을 가리킨다. 즉, 그 상품의 가격이 이 수준 이하이면 구매를 하지만, 이 수준을 넘어서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서 구매를 유보하게 되는 가격이다. 유보가격은 준거가격과 마찬가지로 구매자의 경험이나 정보에 의해서도 형성되지만, 무엇보다도 구매자 자신이 해당 상품에 대하여 주관적으로 느끼는 효용과 지불능력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가능만하다면, 판매자는 상품의 가격을 구매자의 유보가격 수준까지 올려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2002 FIFA 월드컵 당시 한국에서 진행된 경기의 입장권 가격을 보면, 1등급 좌석을 기준으로 할 때, 준결승전 입장권에는 조예선전 입장권에 비하여 3배 이상이나 높은 가격이 매겨져 있다. 준결승전 한 게임의 원가가 조 예선전 한 게임의 원가보다 3배가 높아서일까? 축구팬들이 준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가격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조예선전부터 준결승전까지는 입장권 가격이 높아지다가, 준결승보다 뒤에 벌어지는 3-4위전 입장권 가격은 다시 낮아진다는 점이다.
FIFA가 이처럼 자유롭게 입장권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던 것은 월드컵이라는 상품이 경쟁자가 사실상 거의 없는 독점 상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시장에서 경쟁자들이 존재하므로 경쟁상품들의 가격을 무시하고 우리 상품의 가격을 유보가격 수준까지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구매자들의 유보 가격이 같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유보가격이 높을 때에는 가격을 높게, 유보가격이 낮을 때에는 가격을 낮게 책정한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중요하다.
3) 최저수용가격
가격이 낮을수록 구매자들이 무조건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며, 어느 수준이하로 내려가면 해당 상품의 품질을 의심하게 된다. 바로 이 수준의 가격을 최저수용가격(lowest acceptable price)이라고 부른다.
4)로스 어버전
가격이 인하되면 판매량이 늘어나고 가격이 인상되면 판매량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어떤 상품의 가격을 10% 인하한 경우와 10% 인상한 경우를 비교하면, 어떤 경우에 판매량의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날까? 정답은 가격인하보다는 가격인상에 약 2~3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격을 10% 인하한 경우에 판매량이 10% 늘어났다면, 가격을 10% 인상한 경우에는 판매량은 20~30%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로스 어버전(loss aversion)이라고 부른다. 즉, 사람들은 손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경우와 이득이 되는 경우 중에서 손해가 되는 경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가격과 관련해서 보면, 가격인상은 구매자들에게 손해가 되는 경우이고, 인하는 이득이 되는 경우에 해당된다. 마케터는 이러한 현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철도 공사에서 KTX 신규 노선의 요금을 주중 20,000원, 주말 25,000원으로 책정했다고 하자. 주중과 주말 요금이 다른 것은 주중 여객을 늘리고 주말 여객을 줄이기 위함이다. 이 요금을 홍보할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면 어느 방법이 주중 여객을 늘리고 주말 여객을 줄이는데 더 효과적일까?
1. "주중에 이용하시고 5,000원 할인도 받으세요!"
2. 주말에 이용하시면 5,000원을 더 내셔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두 가지 안은 실제로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로스 어버전 이론에 의하면 중요한 것은 이득과 손실의 객관적인 크기가 아니라 심리적인 반응이라는 것이고, 실제로 이와 유사한 상황을 다룬 연구결과들은 손실 회피 성향을 자극하는 2안이 더 효과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로스어버전은 기업이 가격을 인상하려고 할 때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처음부터 가격을 인상하지 말고, 가격인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우리 상품의 가격을 처음에 너무 낮게 매기면 나중에 높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기업하여야 한다.
5)웨버의 법칙과 JND
낮은 가격의 상품의 가격은 조금만 올라도 구매자가 가격인상을 알아차리는 반면, 높은 가격의 상품의 가격은 어느 정도 오르더라도 구매자가 가격인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웨버의 법칙(Weber's Law)에 의하여 설명할 수 있다. 웨버의 법칙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k=(S2-S1)/S1
k= 주관적으로 느낀 가격변화의 크기
S1= 원래의 가격
S2= 변화된 가격
예를 들어, S1= 1,000원, S2=1,200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k는 0.2가 된다. 그러나, S1=2,000원, S2=2,200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k는 0.1이 된다. 즉, 똑같이 200원이 올랐지만, 원래의 가격이 얼마였는지에 따라 구매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가격변화의 크기는 달라진다. 다시 말해서, 원래의 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가격이 크게 올라야만 구매자가 가격인상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개념으로 JND(Just Noticeable Difference)라는 것이 있다. JND란 가격변화를 느끼게 만드는 최소의 가격변화폭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1,000원짜리 상품에서10원 미만의 가격인상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10원 이상의 가격인상에 대해서는 알아차린다고 한다면, 10원이 JND에 해당된다. 즉,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1,000원이나 1,009원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웨버의 법칙과 JND는 기업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구매자가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기업은 그 범위 내에서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판매량이 줄지 않을 것이고, 새로이 확보된 마진으로 수익성을 적지 않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가격을 인하하더라도 구매자가 느끼지 못할 수도있다. 이 경우에는 판매량이 늘지는 않고 마진만 줄어들므로 기업은 가격인하를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6) 가격-품질 연상
경제학의 기본원리 중의 하나는 가격은 수요와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즉, 가격이 높아질수록 판매량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향수, 보석 등의 경우에는 오히려 비싼 것이 더 잘 팔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설명은 구매자들이 가격이 높은 상품일수록 품질도 높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가격-품질 연상(price-quality association)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구매하기 전에 품질을 평가하기 어려운 향수나 보석 등과 같은 상품들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들 상품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구매자들이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지못하므로, 가격에 의존하여 품질을 추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품들을 마케팅할 때에는 가격을 높게 매겨야 구매자들에게 품질이 높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다. 반대로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풍부한 상품들의 경우에는 가격이 품질평가의 단서로서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므로, 품질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가격을 높게 매길 필요가 없다.
7) 구매자 vs. 소비자 vs. 의사결정자
구매자와 소비자와 의사결정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의사결정자는 자기가 가격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에 대하여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장에서 기업은 가격을 비교적 쉽게 올릴 수 있거나, 내리더라도 덜 내릴 수 있다. 불경기에도 10대 청소년들을 타겟으로 하는 시장들은 비교적 타격을 덜 받는 것도 잉러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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